고린도전서 14장 예배에 나타나는 예언과 방언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특히 방언의 은사를 받고서, 그것을 다른 어떤 은사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게 생각했다. 방언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을 아주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며, 자기를 자랑을 하고, 영적인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교회에 잠재적인 해를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의 올바른 사용 규정과 목적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했다.
교회 안에 덕을 세우는 예언의 유익(14:1-5)
본 단락은 예언이 제대로 사용될 때 이 은사가 지역 교회에 가져올 결과에 대한 세 개의 유용한 단어(3절)를 보게 된다.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 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심사가 주 안에서 ‘덕을 세우는 것’이라면, 그가 이 기능을 첫 번째로 언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예언의 말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침해하거나 흔드는 것은 모두 거부해야 한다. 예언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예언을 받을 때에 개인적인 대화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내에서 받는 것이 합당하다.
두 번째 단어는 “권면”으로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보혜사라고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와 어원이 같다. 이것은 문자적으로는 지원하고 후원하기 위해 ‘함께 부름 받다’라는 의미이다. 세 번째 말은 “안위”다. 이 말은 교회의 귀에 속삭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마도 두려움을 경감시키고 평안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안위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임재 안에서 안식하도록 돕는다.
덕을 세우지 못한 방언의 모습과 방언의 올바른 사용 방안(14:6-25)
6-12절에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가를 여러 가지 비유들로 설명한다.
첫 번째, 먼저 자신의 예로 시작한다(6절). 만약 자기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서 계시와 지식과 예언과 교훈을 말하지 않고 방언으로만 말한다면, 누가 그가 전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지 묻는다.
두 번째, 악기의 소용을 예로 든다. 피리나 하프는 고대 제의에 사용되던 악기였고(7절), 나팔은 주로 군사용으로 사용되었다(8절). 그는 피리나 하프 그리고 나팔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다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처럼 모든 소리 또한 듣는 자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소리를 낼 때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않은 것은 시끄러운 잡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바울은 세상에 수많은 민족들과 그 민족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가 있고, 그 소리들은 다 다르나, 각기 고유한 뜻이 있어 서로 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서로에게 외국인(“야만인”개역한글)이 된다고 말한다(11절).
즉 서로 말은 하지만 뜻과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이해와 만남은 불가능하고, 교회의 모임에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더욱 은사를 사모하되, 철저히 교회의 덕을 세우는 위하여 구하라”고 권면한다.
13-25절은 방언을 사용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이 부분은 대상에 의해서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13-19절에 신자 공동체에 대한 적용적 언급을 하고 있다.
13절은 방언 하는 사람은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라고 당부한다. 이는 듣는 사람이 그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해하지 못할 방언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언어로 영과 이성으로 기도할 것을 선언한다. 물론 바울은 방언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익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18절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의 강조는 교회 공집회에서 화자나 청자 모두 전하고 받는 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20절에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20-25절로 불신자들을 위한 적용적 언급이다. 즉 방언과 예언에 대해 불신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20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악에는 성숙한 것 같은데 정확하게 생각하는 일에는 유치한 어린아이 같다는 도전이 깔려 있다. 그들은 방언이 공 집회에 별 유익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24-25절은 갑자기 예언에 유익함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것은 방언과 예언의 우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은 공 집회에서 인식 가능한 말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배의 질서를 위한 방언과 예언의 사용규정(14:26-40)
마지막 단락에서 바울은 교회 예배 안에서 어떻게 방언과 예언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6-28절에 방언에 대한 규정으로 두 세 사람이 있는 경우 순서를 따라 하고, 반드시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을 권면한다(27절). 바꾸어 통역하는 자가 없다면 방언은 당연히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28절).
29-33절은 예언에 대한 규정으로 방언과 비슷한 내용의 규정이 주어지고 있다. 예언도 순서에 따라 말하며, 예언을 분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즉 다른 사람들은 들리는 예언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혹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 단지 사람의 의견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살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먼저 말하던 사람은 말을 멈춰야 한다(30절)고 했을 때의 의도였을 수 있다.
단순히 다른 발언자에게 양보하는 예의가 필요하다는 뜻일 가능성도 있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말씀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언제 말을 멈추어야 할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비판적인 자기 인식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이런 바울의 규정은 당시 고린도 교회 예배가 방언의 은사나 예언을 남용함으로써 혼란과 무질서로 엉클어져 있었다. 이에 바울은 예배를 질서 있게 드려야 할 것을 교훈하며,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심(33절)을 늘 기억할 것을 부탁한다.
34-36절은 특별히 여인들을 대상으로 권면하고 있는데, 그 권면의 핵심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이다. 이런 과격한 명령은 여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특수한 사정 때문일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37-40절은 방언과 예언을 중심으로 한 교회 내의 질서에 대한 결론이다.
바울은 스스로 예언자나 신령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권면이 주의 명령인 사실을 주지 시킨다. 그러면서 예언과 방언에 대해서 금지하기보다는 모든 은사는 어디까지나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적절하게 질서 있게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12-14장에 걸쳐 교회 안에 은사에 대한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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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는 은사는 한 성령께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각자 나눠주신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은사에 대한 우위를 둘 수 없다. 몸 안에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주어지고, 그 다양성 안에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주신 은사에 대한 목적은 철저하게 개인이 아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공적인 예배 때에 무분별하게 방언과 예언을 사용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바른 질서를 가지고 사용할 때에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는 도구가 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전서 13장을 통해서 12장과 14장을 연결하면서 이런 모든 은사들의 사용은 사랑이라는 대 전제를 바탕으로 두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은사는 교회 안에서 전부 무익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개인적인 유익과 잘못된 방법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실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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