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장 영적 은사에 관하여
1-3 예수님을 주로 선포함
4-7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11 활동하는 하나님의 은혜
12-13 다양성 속에서의 하나 됨
14-27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서로의 것이다
28-30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31 제일 좋은 길
바울은 성령의 은사들의 문제를 12장, 13장, 14장에 걸쳐 주의 깊게 다루고 있다. 바울은 예수를 주로 고백함이 성령의 진정한 역사/은사들을 인식하게 하는 시금석임을 지적한다. 고린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주장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영적인 사람들, 혹은 영적인 은사는 고린도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용어인 반면, 바울은 이를 “은사(헬, 카리스마타, 거저 주어진, 아무런 공로나 조건이 없이 주어진 선물들)라는 단어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영성“ 은 성령이 그리스도인 속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2:16)이다.
성령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라도 ”예수를 주시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돌보시는 주이신 예수에 대한 신뢰, 복종, 헌신, 충성, 그리고 경의 등의 태도 속으로 나 자신의 전부를 투신하는 것이며, 예수의 주권을 드러내는 것이다.
4-7절은 삼위일체적 신학을 위한 “기본 계획”을 제사하며, 그것들은 통일성과 다양성 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설명해 준다. 즉, 다양한 은사(4절), 다양한 섬김의 방법(5절), 그리고 동일한 하나님(6절)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동일한’은 하나님이 은사들, 곧 섬기는 방식들의 공통적 근원이 되신다는 것, 그리고 효과적 사역의 분배는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깍아 내리기 위함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의도한 하나의 목적, 즉 전체 교회 공통의 유익 혹은 공동의 선에 봉사하는 것이다. 8-10절에 나열된 아홉 가지 은사들을 김세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교육적 은사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둘째,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는 은사들: 믿음, 치유, 이적 행하기
셋째, 특별한 의사소통의 은사들: 예언, (예언의 평가에 있어서) 영들을 분별하는 능력, 방언, 방언의 통역.
성령의 은사들의 핵심은, 이 모든 일은 동일한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한 분 성령의 활동이라는 것이다(11절).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기 위해서는 한 성령의 매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게 되는 공동체적 실재(reality)로 들어가야 한다.
“모두” 한 성령에 의해 한 몸 안으로 세례를 받았고, “모두” 한 성령에게서 마시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은사를 경쟁적으로 서로 대조하는 것은 몸의 분열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은사의 목적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다(25절). 반대로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함께 공유하도록 의도하신다.
그러므로 한 부위나 기관이 고통받으면 몸의 모든 부분이 함께 고통받고, 한 부위나 기관이 칭찬을 받으면, 몸의 모든 지체가 함께 칭찬을 받는다(26절).
“은사들”이 하나님의 뜻과 관대하심에 따른 “서로 다른 (은사의) 분배”의 결과라면(4-6절), 그리고 그것들이 “공동의 유익”을 위해 전체 교회 내의 “한 사람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면(4절), 이 은사들은 신분 경쟁을 위한 비교의 근거가 될 수가 없으며, 은사의 전체적 면모는 어떤 한 신자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다.
성령이 주시는 다양한 은사의 풍성함의 깊이를 경험하고 증거 할 수 있으려면, 서로 다른 각각의 구성원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전체의 유익을 위해 나름의 다양한 은사를 발휘하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2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나누어 주신 다양한 은사들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들을 나열하고 있다.
복음 선포의 세 직분자들: 사도, 선지자, 교사. 이 세 직분들 외에 교회에서 행해지는 다른 기능의 은사들, 즉 이적 행하는 능력, 병 고치는 은사들, 돕는 일들, 다스리는 일들, 각종 방언하기, 방언을 통역하기 등이다.
모든 은사들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들이므로 근본적으로 다 같이 고귀한 것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은사들 간에 어떤 은사들 간에 어떤 은사가 교회를 쌓아올리는 데 있어 더 큰 역할을 하는가의 관점에서 서열이 있는데, 고린도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방언보다 예언이 더 높은 은사임을 보여주려 한다.
그것은 고린도인들이 진정으로 “더욱 큰 은사”(예언), 즉 교회의 삶에 더욱 유용한 은사를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을 위해서 바울은 먼저 한 은사(예언)를 다른 은사(방언) 보다 더 큰 은사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데, 이 기준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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