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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읽기

고린도전서 3장 참된 지혜, 하나님만이 우리의 자랑

by 소북소북 2021. 3. 31.

고린도전서 3장

고린도전서 3장은 바울이 이미 언급한 고린도 교회의 다툼과 분쟁으로 인한 분파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자기 자랑과 분쟁을 경고하고 있다(1-4절). 바울은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더 언급한다(18-23절). 진정한 지혜란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우리의 자랑이 된다는 것이다.

본문 내용 분해


3:1-4 고린도인들의 미성숙
3:5-9 아볼로와의 관계
3:10-15 다른 건축자들의 책임
3:16-17 하나님의 성전인 공동체
3:18-23 인간의 자랑과 거짓 지혜의 배격

고린도인들의 미성숙(3:1-4)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모습과 미성숙한 모습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2:6-16에서 언급한 ‘온전한 자’에 대하여 다른 각도와 표현을 가지고 재론한다.

2021.03.31 - [말씀읽기] - 고린도전서 2장 인간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고린도전서 2장 인간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

고린도전서 2장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라는 대조되는 주제를 2:1-5에서 자신의 모습과 연관시켜서 계속 논의한다. 세상의 관점에서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말씀이 실제로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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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한 모습과 미성숙한 모습은 지성적인 면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행위와 관련되어 구별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영적이고 도덕적인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상태의 삶과 행동에 머물러 있다면 이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한 사람이다. 고린도전서 2:14에서 바울은 이런 사람을 ‘육에 속한 자라고 했고, 3:1에서는 ‘육신에 속한 자로 묘사한다. 

 


3절에 사용된 헬라어 ‘사르키노스’(sa , rkinoj)는 인간의 본질적인 면에 대한 언급으로 현재의 상태를 나타낸다. 반면에 ‘사르키코스’(sarkiko , j)는 변화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인간에 강조점이 있다. 고린도전서 2:14의 ‘푸시 키코스’(yuciko, j)는 성령을 받지 않은 비그리스도인 1)을 의미한다. 그러나 3:1의 ‘사르 키노스’(sa , rkinoj)는 성령을 받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나 아직 성령에 의해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 즉, 십자가의 말씀에 따라 사고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윤리적인 열매가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참조. 고전 2:14).

 

바울이 1절에서 ‘어린 아이’(nh , pioj, baby, infant, child; immature; innocent; under age 참조. 갈 4.1)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2:6의 ‘온전한 자’(te, leioj, complete, perfect, whole, full-grown, mature)와 대비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울은 믿음의 성숙이 음식을 먹는 어린아이의 성장과 비슷함을 말한다.

바울 신앙

성숙의 단계를 암시하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했을 때 그들은 지금까지 아직 어린아이 상태라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성숙의 때가 지났는데도 아직 미성숙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과거에 뿐 만 아니라, 현재에도 지혜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미성숙한 자들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바울이 판단한 근거는 3절에 언급한 그들의 ‘시기와 분쟁’(zh /loj kai. e;rij)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세상적이며 인간의 욕심과 자랑에 근거해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시기는 서로 대립하는 경쟁의식을 말하며, 분쟁은 구체적인 분파적 논쟁을 의미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지라도 실제로는 인간적인 욕심에 따라 살고 있음을 지적한다.

고린도 교회의 시기와 분쟁의 근거는 무엇인가?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시기와 분쟁의 근거를 암시하는 것은 4절에 나타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나는 바울에게라(evgw . me, n eivmi Pau, lou)’ 또는 ‘나는 아볼로 에게라(evgw. VApollw /)’라고 분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시기와 분쟁의 원인라고 제시한다. 여기서 ‘게바’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베드로가 현재 고린도에서 사역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의 평가는 분명한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사람이 아니냐?’라고 질문한다. 3절에 언급한 내용을 반복한다. 바울이 자신의 이름을 먼저 언급한 것은 무제가 있다면 자신도 책임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복종하며 성령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을 의미한다.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판단이 자기중심적이고 육신의 욕망에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이다.

 

아볼로와의 관계(3:5-9) -바울은 아볼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바울은 3:5-9에서 자신과 아볼로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아볼로가 서로 경재 관계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알게한 것이다. 바울은 아볼로가 경쟁자나 적대자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역자(dia, konoj) 임을 분명히 말한다. 사역자는 원래 식탁 봉사자를 의미했으나 바울은 복음 선포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지칭한다(고후 3:6; 5:18, 19; 6:4; 11:23).


바울은 아볼로와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6-7절에서 설명한다. 바울도 아볼로도 다 하나님의 동일한 일군으로 일하였을 뿐이라고 말한다(9절).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동일한 동역자로 인식한다. 자라나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뿐 이시이다.

다른 건축자들의 책임(3:10-15)

바울은 터를 닦는 사명을 맡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일을 맡았다(10절). 건축할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11절). 10절의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이 바울 자신에게 주신 사도직을 언급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롬 12:3; 15:15; 갈 2:9).

고린도전서 3:10-17에 나타나는 건축자는 누구인가?

건축의 재료는 금, 은, 귀한 돌(보석), 나무, 풀, 짚이다(12절). 12절에서 ‘금, 은, 보석’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암시하고, ‘나무, 풀, 짚’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미혹된 지혜와 수사(학)을 암시한다. 건축물에 대한 이런 표현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대상 29:2; 대하 3:6).

 

바울이 이 단락에서 언급한 ‘공적’은 무엇인가?


13절의 ‘공적’(to. e;rgon)은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판단하고 시험할 사역자들의 수고와 행위를 의미한다. ‘그 날’은 이미 고린도전서 1:8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심판의날이다(참조. 암 5:18, ‘주의 날’). ‘불’은 종말론적인 문맥에서 심판과 깊이 연관된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불로 심판하실 것을 암시한다(참조. 사 66:15-16; 말 4:1; 마 3:10; 살후 1:7).


15절은 14절과 반대의 결과를 설명한다. 14절에서 ‘해를 받는 다는 것’은 ‘손해를 입다’의 의미로 ‘벌을 받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참조. 빌 2:16; 살전 2:19). 그러나 ‘삯을 받지 못하는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서로 싸움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있었다(참조. 고후
6:16-17).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각 개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참조. 고전 6:19-20).

하나님의 성전인 공동체(3:16-17)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시지 않는다(참조. 사 66:1; 왕상 8:27; 행 7:48-50). 하나님은 이제 신약 시대에 교회 공동체 가운데 거하신다(참조. 사 2:1; 44:3; 겔 36:27; 39:29; 욜 2:28; 학 2:5).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니라.’(레 19:2).

인간의 자랑과 거짓 지혜의 배격(3:18-23)

바울은 18-23에서 고린도 교회의 자랑과 분파의 주제를 다시 언급한다. 바울은 진정한 지혜는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가 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18-21절, 참조. 갈 2:2; 6:3, 7). 19-20절 에서 바울은 구약성서를 인용한다(욥 5:13; 시 93:11).


18절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기 과시적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내용이다(참조. 갈 6:7). 바울은 세상에서 지혜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바울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를 의미한다(고전 1:20-21).

 

19-20절에서 세상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미련한 것이다(고전 1:20). 21절은 논지의 결론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다(23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임을 밝히면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는 사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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